상호정(相好亭)은 성종대(15세기후반)에 5世 부정공(副正公) 조유(趙瑜) (순천입향조)의 첫째 아들인 6世 참의공(參議公) 조사문(趙斯文)의 아들 4형제(7世) 지산(智山), 지곤(智昆), 지륜(智崙), 지강(智崗)이 베개를 같이 베고 형제지간에 우애를 돈독히 하며 동락(同樂)했던 곳이다.
이러한 뜻에서 6世 참의공(參議公) 조사문(趙斯文)의 자손을 상호정파(相好亭派)라고 칭하기도 한다.
이들 네 형제는 아침저녁으로 옷깃을 나란히 하며 이 정자에서 세상의 번뇌를 잊은 채 화락친애(和樂親愛)하게 지내면서 낮이면 시문(詩文)을, 밤에는 고금의 역사와 학문을 토론했다 해서 정자 이름도 ‘상호(相好)’라 불리었다.
오늘날 이 정자를 있게 한 조사문(趙斯文) 선생은 사육신과 함께 죽음을 당했던 조숭문(趙崇文)과 친형제이다.
상호정은 현대인들에 많은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성삼문(成三問)과 함께 생을 마감했던 동생 절민공(節愍公) 조숭문(趙崇文)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긴 참의공(參議公) 조사문(趙斯文) 선생은 어지럽게 돌아가는 나라꼴을 한탄 하면서 초야에 묻혀 후학들을 양성하며 보내셨는데 뒤에 전주에서 처형 당하셨다.
상호정(相好亭)은 전라남도문화재자료 제49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건립 연대는 지금으로 부터 500여년 前 성종 5년(1474)에 건립되었다.
상호정(相好亭)은 팔작지붕에 골기와를 얹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ㄱ자형 건물인데 살림집과 유사하다.
현재 상호정(相好亭) 옆에는 조사문(趙斯文)과 조숭문(趙崇文) 형제의 부친인 조유(趙瑜)를 비롯해 선조 6위를 모신 옥천조씨들의 사우(祠宇)인 겸천사(謙川祠)와 조숭문(趙崇文)과 그의 아들 조철산(趙哲山)이 세종 2년에 순절(殉節)하자 조숭문(趙崇文)의 손자가 추념하여 건립한 영모제(永慕齋)가 함께 들어서 있다.